빌딩 지을 때 미술작품 설치 대신 문예기금 냈더니 정부 금고서 '낮잠'

입력 2017-09-27 18:30  

130억 문예기금 7년째 방치
문체부 "법규 모호…집행 못해"
서울시 "기금관리권 넘겨라"
국회 "정부가 통합운영 바람직"

야외 조형물 서울에만 3584개
'해머링맨' '아마벨' 외 수작 드물어
2011년부터 기금 납부도 허용
일각 "비자금 조성 통로로 악용"



[ 박상용 기자 ] 건축주가 빌딩을 지으면서 낸 문화예술진흥기금 130억원이 한푼도 쓰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새 건물을 지을 때는 미술작품을 설치해야 하고, 직접 설치하지 않는 경우 기금으로 대신 내 순수문화예술 지원에 쓰게 돼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잠자고 있는 기금의 관리권한을 넘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공공예술 진흥에 쓰겠다더니…

27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건축물미술작품제도’를 통해 적립된 문예진흥기금은 129억5800만원이다. 이 제도는 연면적 1만㎡ 이상 규모의 건물을 지을 때 건축비의 일부(0.5~0.7%)를 미술작품 설치에 쓰거나 설치 비용의 70%를 문예진흥기금으로 출연하도록 정하고 있다. 올해 서울에서 연면적 1만㎡짜리 건물을 짓는다면 건축주는 1억2684만원을 회화나 조각 등의 미술작품 설치에 써야 한다. 이 금액의 70%(8878만8000원)를 문예진흥기금으로 내도 된다.

일정 규모 이상 건축물을 지을 때 조형물 설치를 의무화하는 건축물미술작품제도가 도입된 건 1995년이다. 공공예술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북돋우고 도시 미관을 개선한다는 취지였다. 그 전까지는 권장사항이었다. 이렇게 설치된 대표적인 건축물 미술작품으로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 앞 ‘망치질하는 사람(해머링맨)’이나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빌딩 앞 ‘아마벨’ 등이 꼽힌다. 현재 서울에만 3584개의 건축물 미술작품이 설치돼 있다.

‘망치질하는 사람’이나 ‘아마벨’ 등은 모범 사례로 꼽히지만 그렇지 않은 미술작품도 적지 않다. 건물 한쪽 구석에 방치되거나 예술적 가치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런 지적이 잇따르자 2011년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대신 기금을 낼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고, 이후 적립액이 13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문체부는 7년째 이 기금을 단 한 차례도 집행하지 않았다. 문체부 관계자는 “기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 집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자체 “관리권 넘겨라”…법 개정 요구도

100억원이 넘는 기금이 문체부 곳간에서 잠자다 보니 관리권을 둘러싼 다툼이 만만찮다. 기금 관리를 중앙정부 대신 해당 건물이 있는 곳의 관할 지자체가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시다. 서울시는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해 지자체 기금으로 출연하도록 문체부에 요구하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이런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문체부보다 지자체가 지역의 공공조형물 현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데다 기금이 해당 지역의 공공예술 발전에 쓰이는 게 맞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기금 관리권한을 지자체로 넘기는 방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박용수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문위원은 “관련 규정이 지역문화진흥법이 아니라 문화예술진흥법에 있는 만큼 기금을 정부가 통합 운용하는 것이 법안 취지에 더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문체부는 관리권을 넘기기보다 지역에 기금을 배분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지역에서 걷은 기금인 만큼 지역별로 배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적립비율에 따라 나눌 것인지, 지역문화기금으로 적립할 것인지 등 따져볼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17개 시·도로 나눌 경우 금액이 적어 운용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건축물 미술작품 시장의 구조적 문제도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만만찮다. 특정 컨설팅회사나 갤러리의 영향력이 커 시장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구조적인 폐쇄성이 유망 신진 작가들의 시장 진입을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 비자금 조성 통로로 악용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브로커가 개입해 가짜 영수증을 발행하는 방식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한 예술대학 교수는 “1억원짜리 작품을 설치한 뒤 3억원짜리로 처리해도 적발이 힘들다”며 “이 같은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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